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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 이광민 지사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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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 독립운동 통합에 앞장 선 정의부 대표 이광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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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28일 [경북제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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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광민 지사 사진 | ⓒ 경북제일신문 | 이광민 선생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15년 백부인 이상룡(李相龍)을 따라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한 뒤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에 있던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수료하였으며 이듬해 봉천성 통화현(通化縣) 삼도구(三道溝)에 있는 동화학교(東華學校)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24년 7월 10일, 전해인 1923년에 개최된 국민대표회(國民代表會)가 개조파와 창조파로 양분되어 결렬되자 창조파에서는 노령(露領) 해삼위(海蔘威)를 기반으로 이곳에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정부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노령내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추방당하고 중국 동삼성에 진출한 신숙(申肅)․윤해(尹海) 등과 양기탁(梁起鐸)․편강렬(片康烈)은 이장녕(李章寧)․박관해(朴觀海)․이청천(李靑天)을 설득하여 전만주통일의회주비회 발기회(全滿洲統一議會籌備會 發起會)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이광민은 군정서(軍政署) 대표 중의 한사람으로 참가하여 협의하였다.
1926년 1월 정의부(正義府) 중앙총부에서 내정과 외부조직을 확장하려고 동삼성 각지와 국내에 위원을 파견하여 군인과 군자금을 모집할 때 파견되었으며 1926년 10월 24일 정의부 중앙위원 11인 중 한사람으로 선출되었으며 법무위원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1927년 4월 15일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 조직을 위한 정의부(正義府)․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의 3부 통합 논의에 정의부 대표로 김동삼(金東三)․오동진 등 11명과 함께 선임되어 길림현(吉林縣) 신안둔(新安屯)에서 열린 제1회 각단체대표회의(各團體代表會議)에 참가하고, 1928년 5월에는 전민족유일당촉성회파(全民族唯一黨促成會派)인 여족공의회(麗族公議會)의 대표로 활동하였다.
1927년 5월 길림성(吉林省) 반석현(盤石縣)에 기반을 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에서 이 지역 한인보호를 위하여 보호회(保護會)를 조직할 때 김응섭(金應燮)․김상덕(金尙德)과 함께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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