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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세계유산등재 고유제 봉행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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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26일 [경북제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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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풍산류씨문중(하회마을보존회 회장 류충하)에서는 26일 오전 9시 풍산류씨 하회마을 입향조인 전서공 류종혜 선생의 묘소를 시작으로 10시에는 겸암 류운룡 선생을 모신 화천서원과 서애 류성룡 선생을 기리는 병산서원에서 고유제를 올린 후 11시에는 풍산류씨 대종가인 양진당의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 사당 등 네 곳에서 ‘하회마을 세계유산 등재를 선조들에게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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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북제일신문 | | 고유제(告由祭)란, 국가나 마을 또는 문중에 경사가 있을 때에나 기념할만한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종묘나 사직 또는 조상의 묘소나 사당에 알리는 유교식 제의이다. 지난 2009년 9월 하회마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현지실사 때에도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고유제를 올린바 있으며 이를 지켜 본 ICOMOS(국제기념물유적위원회) 위원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번 고유제는 ‘하회마을 세계유산 등재를 조상들에게 알리고 후손들이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대내․외에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하회마을 내에 있는 풍산류씨 문중의 유적지에서 거행됐다.
고유제를 올리는 유적지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고유제를 올리게 될 풍산류씨 하회 입향조인 전서공 류종혜(柳宗惠) 공의 묘소는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花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전서공은 풍산 상리에 살았는데 후손들이 대를 이어 번성 할 수 있는 길지(吉地)를 찾아 산천을 누비다가 화산에 올라 주위를 살폈더니 지금의 하회마을이 천하제일의 명당임을 알고 풍산 상리에서 이곳으로 기지를 옮겨 입향하신 분으로 오늘날의 하회마을을 있게 한 분이다. 관직은 공조(工曹)의 전서(典書)를 지냈고 선생의 기적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화천서원(花川書院)은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 유림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정조 10년(1786)에 건립한 곳으로 선생의 제자인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1560~1622)과 종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1598~1674)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는 부용대 동쪽 옥연정사 옆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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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북제일신문 | | 병산서원(屛山書院)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도산서원(陶山書院)과 함께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과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 1582~1635)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제향을 받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마지막으로 고(告)하게 될 양진당(養眞堂)은 풍산류씨 문중과 후손들에게 정신적으로 구심체가 되는 상징성을 지닌 곳으로 대종가(大宗家)이다. 한 집안에서 두개의 사당 건물을 갖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겸암과 서애 선생의 아버지인 황해도 관찰사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선생이 불천위로 모셔져 있으며, 선생의 맏아들인 겸암 류운룡 선생도 불천위로 모셔져 있어 한 집안에 불천위로 모시는 선조가 두 분일 경우에는 하나의 사당에 두 분의 불천위를 모시는 것은 예(禮)가 아니라고 해서 두개의 사당을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조상들에게 고하는 고유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위원회)에서 하회와 양동마을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을 보류할 것을 권고했지만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의 21개 이사국의 위원들로부터 등재 확정을 이끌어 낸 결정적인 사안이 되었던 ‘한국의 역사마을이 지니고 있는 살아 있는 가치’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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