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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큰 전시회, 거장(巨匠) 남관 화백‥100년만의 귀향(歸鄕) -청송

- 고향 마을의 작은 학교에서 열리는 남관 전시회-

2012년 05월 29일 [경북제일신문]

 

ⓒ 경북제일신문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남관 화백의 전시회가 그의 고향인 경북 청송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학교 강당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청송군이 기획하고 대백선교문화재단과 환기미술재단이 후원하며 남관의 생애 작품 120여 점과 사료 100여 점이 전시되는 대규모 전시회로 추상화에 대하여 생소할 뿐만 아니라 농업이 주업인 인구 2천여 명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이색적인 전시회라서 화제가 되고 있다.

남관은 1911년 경북 청송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을 서당에서 수학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그의 재능을 발견한 일본인 선생에 의하여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하면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산골 마을 소년이던 남관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널리 인정받은 작가이다.

1954년 도불(渡佛)을 결정한 남관은 이미 한국 화단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던 터라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곧 파리화단의 국제적 경합 속에서 한국 화가로서의 관록을 과시할 수 있었다. 1958년 초대출품이 예술가로서의 「명예로운 확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쌀롱 드 메」에 초대받는 유일한 한국 화가가 되었다.

그 후로도 연속 다섯 번에 걸친 「쌀롱 드 메」에의 초대 출품은 물론, 1970년대까지 파리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 소장 작품을 두고 있는 역시 단 한 사람의 한국 화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66년 쟁쟁한 현역 작가들로 구성된 프랑스 유일의 유서 깊은 「망뚱 회화비엔날레」에서 세계적인 화가들을 제치고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여 파리화단을 들썩이게 하였다.

1968년 귀국한 이래 국전 서양화 심사위원장, 홍익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파리와 서독·스위스·룩셈부르크 등 유럽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던 남관은 세계 각지에서 초대전을 갖게 된다.

남관의 미술사적 위치는 참으로 대단하다. 당시 세계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동양의 정신과 체험을 서양의 추상기법과 재료를 통해 독창적인 심상적 추상세계를 표현해 국제 화단에서 당당하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국내 미술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업적이며 수많은 전시회를 통하여 한국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독창성을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인간 내면의 진실을 표출하는데 무게를 둔 남관의 독창성은 동양과 서양의 완전한 결합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번지듯, 그 무언가로 소생하려는 예감에 찬 그의 공간은 자신만의 특유한 삶과 생명의 논리를 가졌다. 주름살을 지닌 공간과 더불어, 공간 속에 시간이 숨 쉬고 있는 또 다른 그의 공간은 무한 속에 용해되어 하나의 현실로 극적인 변신을 꾀한다. 또한 먼 기억 속에서 헤어져 나온 상처와 쓰라린 세월의 흔적들은 그의 작품에서 일그러지고 조각난 숱한 마스크로 새겨져 있다.

“나는 두 차례의 전쟁(태평양전쟁, 6.25전쟁)을 겪었다. 숱한 시체, 숱한 부상자를 보았다. 그들의 비틀어진 얼굴들은 꼭 고성의 무너진 돌담 조각 같았고, 오랫동안 흙 속에 파묻혀 신음하던 석기시대의 부서진 유물들이 마침내 강한 햇볕에 드러난 흠 진 자욱 같이 보였다.”

세계적 평론가 가스통 디일로부터 ‘동서양 문화의 어느 일부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둘을 융합 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예술가’란 찬사를 받았던 남관은 서양의 조형과 동양의 마음이 만나는 것 같은 작품들을 쏟아낸다. 특히 6.25 전쟁 때 종군화가를 하면서 겪은 전쟁의 공포와 악몽이 무의식 중에 깔려 있는 그의 작품은 격한 몸짓으로 강력한 개성과 색채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얼룩이나 발묵, 드리핑(dripping), 데칼코마니(decalcomanie), 꼴라쥬, 데꼴라쥬 또는 네거티브 꼴라쥬 등의 다양한 기법을 적극 활용하면서 우연과 세련된 절제가 만들어 내는 상징적 아름다움을 구현하였다. 또한 동양의 전통 색채인 쪽빛(푸른색)의 풍부한 감성과 무한한 깊이는 남관 예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신비와 영원, 불멸을 상징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남관은 평생을 창작에만 몰두한 화가이다. 현실과의 타협에 서툰 그는 당시 화단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제17회 국전 서양화심사위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입상작 선정이 사전 담합에 의한 돌려먹기 식이 되자 심사 도중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해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것은 그의 예술가적 고집과 외골수와 같은 선비적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오로지 작가는 양심적 자기 세계를 개척하고 구축해야 진정한 창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지금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광복과 동시에 한국으로 귀국한 남관은 고향 청송에 3년간 머물게 된다. 그의 회화세계의 대부분이 소년 시절, 고향 풍경, 옛 유적, 전쟁과 같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때의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향의 노인들> <두 노인> <농부가족> <귀로> <두 여인> <호박> 등 많은 작품들이 고향의 아련한 서정을 담고 있다.

“여섯 살 때로 물고기를 잡아온 나를 어머니는 몹시 꾸짖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었지요. 행여 나의 성격이 거칠어지고 비뚤어질까봐 염려해 주신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술의 길을 내가 택하게 된 것도 이런 어머니의 보살핌 때문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다 잠시 쉴 때 눈을 감으면 고향의 맑은 자연이 나의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창작에 몰두하던 남관은 그의 마지막 전시회인 도쿄 아트 엑스포가 열리던 다음날인 1990년 3월 30일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8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그가 평생을 그리워 하던 고향 산자락에 안장되었다.

어린 시절 학교 유리창 너머로 남관의 그림 그리던 모습을 기억하는 지금의 고향 노인들에게 작품으로 다시 마주 서는 남관의 감회가 어떨지 사뭇 궁금한 이 전시회는 5월 30일부터 6월 13일까지 그의 고향 마을인 청송자동차 고등학교 강당 특별전시실에서 15일간 개최된다.

남관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파리 시립미술관, 룩셈부르크 국립박물관,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미술연구소, 프랑스문화성, 국립현대미술관, 청와대 상춘재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경북제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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